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가질 수 있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를 수 있다.
<역경>
차분히 앉아 적어보는 나의 실거주 갈아타기
매수부터 잔금까지 엄청난 급등장이 펼쳐져서 마음이 쫄깃하다 못해 심장이 떨어질 뻔한 일들이 많았다.
도대체 왜 갑자기 급등하는데
나는 실로 아기 초식 공룡같이 무해하고 돈 없는 멸종 위기 공룡이었고
나를 제외한 지방 호족 + 돈 있는 모든 분들이 가진 엄청난 현금 파괴력에
가계약금 넣자마자 ‘배액 배상’ 얘기가 오갈 만큼 마음 졸일 순간들이 펼쳐졌다.
심지어 나는 아파트 투자가 처음도 아닌데도,
매 순간 소장님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방울토마토 색 얼굴과 흙빛이 된 얼굴로 다크서클이 짙어졌었지.
나는 낭만적인 나이를 지난 어른이므로
반포 갈아타기를 자세히 써봤자?
이름 모를 누군가의 빈정거림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고
굳이 일기장에 적어도 될 일이지만
생일을 맞이하여 나의 힘들었던 매수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름 석 자를 적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굳이 적어 보여드려야 했다.

등기로 보니 더 가슴이 웅장해지네
나는 티라노사우루스 버금가는 공격성을 가진 에르메스 그녀 (매도자)
앞에서
실로 둘리처럼 불쌍한 초식공룡의 모습으로 앉아, 나의 사정을 말하고 에르메스 그녀에게 맞춰 줄 수밖에 없는 급등장에 놓여있었다.
이유야, 내가 이사 가는 곳이 지금 사는 곳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받는 잔금의 날짜보다, (근데 나도 현시점 최고가로 팔았는데)
에르메스 그녀는 잔금을 빨리 치라며 불을 내뿜었고, 그 사이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위기들이 총 4건이나 발생했었다.
기막힌 사건들은 언제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조차 예상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인들에게 이 거래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조언을 구했었다.
사람 보고 주는 거지
물건 보고 빌려주나?
나의 선배님은 전화 한 통으로 선배님의 신용을 통해 *억을 빌려주셨고,
슈가원은 ‘언니 *억은 내가 줄 수 있어요. *억은 언니가 금방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내 불안을 잠재웠다.
그 사이에 무민보는 ‘밥’이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돈을 10만 원이나 보내더니
행부형이 고생한다고 양꼬치에 칭따오를 말아주며, 이게 맞는 길이니 두려워 말라고 인도해 줬다.
카렌과의 일대일 상담을 통해 짝꿍은 전투력을 곱절로 올렸고
중개사 흥겨미는 복비 아껴준다며 공동중개를 알아봐 주었다.
나의 매수기는 시리즈 연재 물인데..
반포 매수기라고 적으면 이름 모르는 이웃이라도 한 번 읽어는 봐주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도서관 바로 옆집으로 이사 간다는 제목 말고는 도저히 제목을 지을 수가 없었다.
살롱 멤버들에게 “에르메스 xx”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건 서사의 중반부에 들어가야 하니 참아야지? 키득거렸다.
웃는 걸 보니
큰 산을 겨우 다 넘었구나.
이렇게 또 성장하는 중이다.
도서관 앞으로 이사 가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주민센터 위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 (책도 역대급으로 낡았어) 이 있다.
옆 대단지 아파트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도서관은 주차장이 아예 없고, 열람실의 좌석이 30개 정도에 불과하다.
책만 겨우 대여하느라 이용할 뿐,
어린이 열람실이 있는 도서관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30분 나가야 한다.
이 많은 신축 아파트의 거주자를 위해 도서관을 짓지 않고
넓은 주차장 부지를 갖춘 그 좋은 땅에 문화 체육관을 지은 이유를 알 수 없다.
내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를 두고 요가랑 헬스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번씩 가볼 때마다 이용자가 없어 강의가 폐강되는 걸 보면 세금이 너무 아까워서 몇 번이나 이 동네 정치인들에게 글과 문자까지 남겼었다.
“도서관 좀 지어주세요!!!!”
단지에 있는 작은북카페로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갈급함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 이사를 간다면 2가지 조건을 반드시 갖추리라 다짐했다.
1) 도서관 도보 10분 이내
2) 학원가 도보 10분 이내
앞으로도 소처럼 일할 생각이므로 아이가 스스로 학원과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해야 했다.

부자가 되려면 3간을 바꾸세요.
시간 공간 인간
이번 갈아타기를 준비하는 동안 마음의 위로와 위안을 받았던 한 권을 뽑으라면
이하영 작가의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

몇 개의 매물을 추려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느 주말 가족들이 열람실에 앉아 스마트폰 감옥에 폰을 넣어두고 집중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이 가족은 주말마다 온다.
도서관을 끼고 살고 싶어요
1) 도서관에서 보고 싶었던 다양한 정기 간행물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
2) 도서관 열람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깊게 몰입하는 시간을 경험하는 것,
3) 신간이 도착했을 때의 책 냄새,
4)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시간이 확장되고 넓어지는 느낌
이 모든 게 삶의 습관으로 아이에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삶의 루틴과 습관은 무의식에서 자리 잡고 그대로 행하게 되는 것처럼,
그 습관화는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습관이 되려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 행위를 했을 때의 즐거움을 느껴야 하고, 그 공간이 스스로 즐거울 때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게 된다.
아이가 주말엔 도서관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것이 당연한 습관이 되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열람실에 마주 앉은 고등학생 누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문제를 푸는 모습도,
한참 어린 귀여운 유치원 동생들이 한자 한자 글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들도 보면서, 일상의 사유를 즐기기를 원한다.
그러면 아이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공간이 주는 힘에 의해 바뀌게 될 거라 믿고 있다.
부자가 되려면 내가 시간을 보내는 장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장소, 그리고 네가 읽는 책을 보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그 사람이 보내는 시간과 장소,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이 그 가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내 삶의 기본기를 쌓는 시간 동안 어디에 자주 머물렀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 기억들로 만든 습관으로 삶을 채우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분을 자주 느껴야 한다.
그래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개의 매물을 집어냈으나
손에 닿는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왜냐면 다들 너무 비싸요 ㅋㅋㅋ)
도서관을 찾아 임장 다니기

아이 데리고 주말마다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의 준비 스타트
현장 물건을 봐두었으니 마음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5개 매물을 추렸다.

급매는 없었어. 한주에 5천씩 오르던걸?
선 매수 후 매도는 행부 형처럼 용감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깜냥은 없으므로
일단 짝꿍부터 소장님 마사지를 받게 한 다음, 집을 내놨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짝꿍을 카렌에게 1 대 1 컨설팅 보내놓고
단단히 마음 잡수시라~
정신 무장 시켜드렸다.

후루룩 팔려버린 내 집, 타이밍 기가 막혔지

누가 나 좀 믿고 따라오라고 하면 좋겠다

상급자 갈아타기의 핵심은
얼마나 내 집에 욕심을 내려놓느냐
사실은 이렇게 이사 갈 줄 모르고
초등학교 입학 준비한다고 사립초 정보를 뒤지며
불과 2년 전 신축 아파트를 바닥 마루부터 다 뜯고, 싱크대까지 갈아엎었던 ‘내’가 제일 내려놓아야 했다.
그 와중에
도서관 옆집 매물들은 바람이 불면서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붇 공부 짭밥과 등기 바이브를 가졌던 나는 현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동물적으로 직감한 후 소장님께 바로 외쳤다.
소장님, 이번 주에 계약금 입금 조건으로
5천만 원 조정 가능요!
그러자 일주일 만에 하루 3팀씩 오시더니 내 손에 계약금이 쥐어졌다.
그렇게 난 반포 아파트를 사고 말았지
나의 매도 운과 짝꿍의 매수 궁합, 소장님과 티키타카, 선배님의 풀 지원, 지인들의 운까지 모든 논리와 비논리의 요소들이 결합하여 완성한 신묘한 매수.
에르메스 그녀에 대해서는 20장 정도 적어두었는데,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문 채 나만 보고 말아야 할지,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나게 촌철살인 정신으로 적어내려갈지 고민된다.
더 읽고 싶은 사람 있나요?
없으시면 오라이
